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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Diary

준비되지 않은 휴가

by MJINAUS 2022. 1. 28.

어제도 과호흡이 오는 걸 겨우 버텨냈다. 한 번 참고나면 그 날 하루는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경험이란 것은 대게 다양한 돌발상황에 노출되며 쌓이게 마련인데 늘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게, 정당하고 정직하게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려 노력한다. 가끔 잠도 못 잘 정도로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도 일어나기도 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소수(혹은 개인)는 항상 존재하지만 계속되는 문제발생-해결 과정을 통해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경험을 갖게 된다. 감정을 터치하는 리더십까지 흉내내는 로봇이 나타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여러 해 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동료들과 많은 일을 겪으며 서로의 가정사도 다 알 정도로 동료들과의 점점 깊어지는 우애도 항상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내 신념을 강하게 뒷받침 해준다. 각자가 가진 스킬의 차이는 물론 없을 수 없지만 본인의 역량 안에서 프로페셔널함을 잃지 않으려 알아서 노력하는 모습은 참 바람직하다. 그렇게 트레이닝을 해 왔고 그런 분위기의 유지를 위해 그동안 쏟아 온 에너지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헤드셰프가 휴가를 가 있는 요즘 문제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고 모든 게 수월하게 잘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말이다.. 휴가중인 헤드셰프로부터 연락이 왔다.
2월에 퇴사하기로 했던, 최악의, 얼마 전 퇴사한 R외에 또 한 명의 R이 뜻을 번복했다는 소식이다. 이번이 3번째다. 연봉 인상을 3년 연달아 거절당한 것이 지난 퇴사의사를 밝히며 언급한 사유였는데 또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기에는 부족한 본인의 역량을 깨달은 걸까. 이젠 반대로 내가 나가야 하는 걸까. 물론 그럴 수는 없지만..

오늘 쉬는 날임에도 CDP 빈센트에게 전달할 몇가지 내용이 있어 잠시 업장을 들렀다. 나를 본 그는 울상으로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그도 역시 오늘 R때문에 무척 화가 나 그 녀석을 아주 흠씬 두들겨 팰 뻔했다고 털어놓는다. 빈센트가 그런 말을 한 건 처음이다. 경력직으로 입사해 2년 정도 일한 빈센트의 심정을 지난 5년간 R과 함께한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저 녀석이 싫어.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고 아주 짜증이 나 죽겠어. 라는 말은 10번도 넘게 들었어도 얼굴에 펀치를 날려버리고 싶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참아야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키친 안에서 폭력은 용납치 않을 것이다."
라고 빈센트를 약올리고 커피 한 잔 얻어 먹고 나왔다.

항상 내 휴가 앞에 헤드셰프의 휴가. 그의 휴가기간에 겪는 극한의 스트레스. 그래도 그가 오면 내가 떠날 차례.

이번 주 인보이스 잘 취합해서 stock sheet 작성하고, 위클리 세일즈랑 prime cost 계산하고 임의로 변경한 roster 특이사항 잘 정리해서 헤드셰프 메일로 쏴놓고, 내가 휴가 가는 중에 있을 Steve의 생일카드와 선물 잘 준비해서 빈센트에게 전달하고, 키친 대청소 싹 해 놓으면 휴가 갈 준비는 다 끝나는데 휴가 때 구체적으로 뭐할지를 아직도 못 정했다.


사용 후 제자리에 놓고, 또한 품명이 앞에 보이도록 놓으라는 말을 어느 한 사람에게 몇 년 째 하고 있다. 이건 개인의 성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커머셜 키친에서는 그냥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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