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차를 세우고 한 5일은 버틸 수 있는 캠핑장비와 식량을 가득 채우고 이런 산길을 몇시간 주구장창 달리는 건 꽤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3일 혹은 그 이상의 휴일만 주어진다면 무조건 시드니 바깥으로 떠난다.
자유를 찾아 왔는데 전화기가 안터지니 불안한 건 뭐지..
38L에서 70L로 아이스박스를 업그레이드 했는데 그래도 공간이 부족하다.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를 할 때 점점 짐이 많아지고 머지않아 그 집이 또 작게 느껴지듯이 이것도 그렇다. 늘 미니멀리즘을 갈망하지만 현실과의 타협에서는 뛰어난 협상가의 기질이 여지없이 발휘된다.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는 소비에서 오는 충만감은 늘 일시적이다. 게다가 70리터를 채우자니 음식 비용도 만만찮게 드는데, 기존의 작은 아이스박스가 운반도 편하고 욕심도 덜 부릴 수 있어 나름 장점이 있었지만 지금 이 큰 아이스박스를 다시 팔고 작은 것으로 돌아가라면 그것 또한 상실감이 클 것 같다. 이러다 나중엔 배터리에 연결해 사용하는 차량용 냉장고를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닐지..
올해 초 검트리에서 무료로 얻어와 가라지에서 잘 말려놓은 통나무들을 잘게 쪼개는 건 텐트 설치 후 가장 먼저 할 일. 떨어져 나온 손바닥만한 작은 조각들은 스타터가 되고 나머지는 캠프파이어용으로 세시간에서 다섯시간 정도 불이 지속된다. 작은 조각 하나는 텐트에 넣어두면 유칼립투스 방향제 역할을 톡톡히 함.
4남매를 데리고 온 어느 부부가 바로 옆에 텐트를 친다. 꽤나 시끄럽겠군.. 생각하다가도 난 아직 아이가 없지만 4남매를 키우는 건 감히 나나 내 아내가 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거룩한 일이라는 것을 느낌적으로 알게 된다. 프라도에 트레일러를 달고 온 이 가족, 아니 아빠는 거의 다섯 시간에 걸쳐 가제보 두 개, 텐트 세 동과 샤워실, 야외키친, 캠프파이어 준비, 저녁 식사준비, 카약 두 개에 바람을 넣고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오기까지 마친 후 차 뒤에 쭈그려앉아 소박한 보상이라도 받듯 달콤한 담배 한개비를 태운다.
누가 그에게 금연을 강요할 수 있으랴.
가제보에 연결한 텐트는 도착 후 불어닥친 엄청난 비바람에 일부가 찢어지고 고리가 파손됐다. 삼일만 버티자 하고 다시 페그를 박고 재정비하니 나름 버텨볼 만 하다. 이미 멘탈은 바람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갔다. 텐트 천은 헤비듀티로 짱짱한데 결로가 꽤 심한 것이 단점.
내가 좋아하는 이런 류의 캠핑장은 개별로 정해진 사이트가 없고 내가 치고 싶은 곳에 텐트를 친다. 나무 아래든 잔디밭이든 물가쪽이든,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고 수위 또한 확인해야 하고 약간 까다롭긴 하지만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게끔 BBQ나 캠프파이어 위치를 정해야 한다.
몇 개 안되는 이 사전작업을 마치고 난 후에는 집에 갈 때까지 별로 할 일이 없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먹고 숨쉬고 자고 책 좀 읽다 또 자고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잠깐 일어나 은하수 구경하고.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말이 이젠 약간 절실하게 느껴진다. 작년도, 재작년도, 그 전 해에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내년 크리스마스는 함께 보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앞으로 내 인생의 크리스마스가 몇 번이나 남아있을지.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또 몇번이나 남아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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