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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살기

탁구와 라면

by MJINAUS 2021. 11. 26.

호주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나와 내 가족의 삶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사회 분위기 자체가 한국처럼 다이나믹하지 않은 이유도 있고 자연과 가까이 사는 환경으로 좀 더 느긋하고 천천히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물론 같이 일하는 호주동료들의 100년 수명의 바다거북이 같은 침착함은 반대로 내 수명을 줄어들게 할 것도 같지만 이제는 적응해야지..
주에 5일 40시간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주마다 정해진 급여가 들어오고.. 일주일에 이틀 데이오프는 집안일, 운동, 독서, 개인 공부, 잡생각, 가라지 정리, 취미생활 하다보면 또 주 5일 업무 스케줄이 시작된다. 주마다 급여를 받아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고 벌써 11월 마지막 주, 이제 한 달이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 2021년이 지나간다.

그래도 나름 세이빙도 열심히 해서 주식 투자도 하고 TSS비자도 승인되는 등 몇가지 기분 좋은 일이 있고 그 중 하나는 새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일적으로 교류하며 지내는 지인들을 제외하고 친구는 세 명도 안되는, 그리고 일과 개인생활의 반복 속에서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와이프의 전 직장동료의 남편인데 나이도 한 살 차이,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하는 운동도 게임도 비슷하고 가장 흥미로운 건 실력도 똥망 거기서 거기라 함께 즐기기가 좋다. 그 친구 집에 탁구대가 있어 군대 전역 이후 십수년 만에 신나게 탁구도 치고 오고 지지난주부터 종종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도 플레이하는데 오십보백보 도토리키재기라 참나 이렇게 재미있을수가 있나. 모르는 사람이랑 하면 비참하게 털리기 일쑤지만 이친구랑 하면 반반의 확률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공부 또는 사회 경력은 쌓일 수록 지혜가 생겨 이자 복리 계산되듯 더 능력을 발휘하게 되지만 사람 경험은 하면 할수록 경계하게 되고 까다롭게 되는 이유가 뭘까 고민하니, 제한된 수명과 소모되는 에너지 안에서 나이를 먹을 수록 손해, 손실을 회피하게 되는 본능이 원인인 듯 하다. 나와 맞지 않는 불편한 관계에서 오는 감정적 소비, 혹은 사기꾼에게 당할 수 있는 금전적 손해, 이익도 없고 손해도 없는 무미건조한 관계에서의 시간적 기회비용의 손실. 계산적이고 딱딱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달리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나타나 연이 닿고 끌리는 것이 참 괜찮은 인연인 듯 하다. 나름 이런 인연을 바로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그 느낌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그동안 겪어온 손실(상처라는 소중한 '감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싶진 않다. 아까워도 그냥 포기하고 버려버리는 손해 따위의 단어가 어울린다..)이 그리 아깝게만은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주에 약속한대로 좀 이따 놀러가서 탁구치고 라면먹고 오기로 했다. 그동안 이 친구와 만났던 몇 번의 시간들은 어떤 금전적 이득과 인맥의 확장을 주는 것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만남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내가 지금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생각해보니 내가 마지막에 친구네 집에 가서 라면을 먹은게 대학생때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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