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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살기

각자의 바둑. 거기에 훈수질.

by MJINAUS 2022. 7. 1.

한국에 있는 지인과 간만에 통화했다. 거의 1년만인가.
이제 나이도 있고 서로의 첫번째 관심사는 당연히 먹고 사는 문제고 그 다음은 순서는 밀렸어도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볼 순 없는 투자 이야기다. 특히 부동산과 주식. 0%대 저금리시대가 지속되며 주식계좌예탁금과 CMA계좌 잔고가 사상최대를 찍은 재작년에 주식계좌 하나 트지 않은 이가 주변에 없을 정도다. 아마 한국에 있었으면 어딜가든 누굴 만나든 부동산 혹은 주식이야기 뿐이었을 것 같다. 호주에 있어 다행이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마치 RPG 싱글플레이 하듯 나만의 페이스로 내 할 일 하면서 오롯이 내 게임을 즐길 수 있으니까.

살아오며 내가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한 지혜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다른게 아닌 틀린 것으로 치부하고 배척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보면서도 적어도 자신의 역사를 부정당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난 옳아야 하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정점에 올라 이제는 조금씩 내리막을 걷기 시작할 때 오는 가치관의 혼란은 지금까지의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내면의 절망감으로 우울과 무기력만 낳을 수 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틀린 걸 알면서도 맞다고 우기기도 한다. 공감은 안되지만 어느정도 이해는 된다.

애초에 투자 환경이 다르니 서로 다른 포지션에서 각자의 입장만 펼치다 보면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그래도 투자 얘기를 꺼내게 된 화두가 둘 다 함께 알고 있는 어느 가까운 인물의 최근 투자 실패 이야기였기에 같은 맥락에서 상대방을 도저히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또 나만의 개똥철학을 내새워 조곤조곤 설득을 해 나갔다. 상대를 설득하기 이전에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앞으로의 나에게도 수시로 되뇌여야 하는 투자 철학이고 내가 생각하는 투자의 기본이기에 적어 놓는다.


"인플레이션은 물가의 상승을 이야기하고 물가의 상승은 현금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5에 살 수 있던 양상추를 $13불을 줘야 살 수 있다는 것은 양배추 가격이 뛴 것과 동시에 현금의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한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이 경우는 어떨까. 평소 관심있게 보고 있던 A사의 주식 한 주의 금액이 지난 달 $40에서 이번달 $25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 달에는 한 주를 매수하는데 $40의 현금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불과 $25로 매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금리를 올리고 그로 인해 주식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이 순간에 현금의 가치 역시 떨어졌다고만 봐야 할까?

즉 현금의 가치가 떨어졌냐 그렇지 않냐는 내가 어떤 포지션에 있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확천금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욕심에 수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주변의 추천이나 어느 어느 테마주 등에 올인하는 방식의 투자자라면 현금가치와 주식자산이 함께 폭락하는 이 시기를 버티기 어렵다. 대출 금리는 올라가고 갖고 있는 현금 가치는 하락하는데 대출금으로 매수한 주식자산마저 하락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할 수 있는 건 추가 대출로 더 위험한 투자를 하거나 혹은 절망감으로 꾸역꾸역 근로소득으로 이자를 갚고 버티거나.. 아니면 눈물을 머금은 손절매 뿐이다.

자 여기 다른 포지션이 있다. 꾸준한 적립식 매수를 고수하고, 안정된 직장으로 고정 수입에 문제가 없으며, 대출을 받아 투자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현금 세이빙 안에서의 일부를 떼어내어 적립식 매수를 진행하는 것. 고정적으로 매수하는 금액은 삶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의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

이 투자 방식과 앞의 그것과의 큰 차이점은 '돈' 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투자한다는 것이다. 수십년만의 하락장과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이 시기에 크게 동요치 않고 삶의 리듬을 안정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은 꾸준한 근로소득 발생과 늘 절제하며 아끼는 습관, 큰 욕심을 바라지 않는 정도의 이익 실현을 위한 자신만의 견고한 투자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간'을 투자한다는 개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꾸준하고 장기적인 계획은 보다 리스크로부터 먼 튼튼한 마인드셋과 안정감을 갖게 해준다. 시중금리 혹은 CPI를 아주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수익률만 얻어도 절반은 성공했다는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주식으로 큰 이득을 얻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라고 말했지만.. 결국엔 다 각자의 인생이고 각자의 바둑을 두는 거겠지. 그런데 경제적으로 여유있던 두 지인이 한순간에 집을 날리고 수억의 빚을 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단 소식을 들으니 나도 심장이 쿵쾅대고 바들바들 떨린다.. 한편으로는 비록 초심자의 바둑을 두고 있고 또 느리긴 해도 나는 적어도 바른 방향으로는 나아가고 있구나 라는 걸 새삼 느끼는 중이다. 아울러 또 다른 나같은 초심자에게 건방진 훈수라도 된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Wine barrel candle holder


그나저나 헤드셰프님. 이런 선물 안사다줘도 되니까 너만 가지 말고 나도 휴가 좀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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