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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살기

앞으로 3년이 중요하다.

by MJINAUS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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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운동선수라고 해서 받는 연봉만큼 제 역할을 다하는 건 아니다. 이미 은퇴한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과거 텍사스 시절은 늘 '먹튀'라는 단어와 함께 회자되는데 화려했던 다저스 시절 말고 이 시기를 가만 들여다 보면 비록 그의 MLB 커리어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긴 하지만 그것 또한 누구의 그것과도 바꿀수 없는 한 프로선수 일대기의 한 장면이다.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본인이 메이저리그를 떠나 그 다음을 어떻게 준비하냐에 있어 매우 소중하고도 값진 기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프로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일하다보면 늘 긴장하고 경직되어 있다. 진짜 프로가 되려면 더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일거다. 잘하려는 욕심이 앞설 때가 많고 그만큼 잘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한다. 하루하루 성장하는 만큼 하루하루 쉬운날이 없다. 없는 문제도 해결하려고 만들어내니 말이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일단 일이 재밌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위치에서 프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몸이 하나 둘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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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누워 멍하니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단 한번이라도 좀 게을러져볼까?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한 번 그렇게 해볼까..? 아니,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돌아가며 게으름의 바통터치를 무한 반복중인데 나도 그 행렬에 좀 동참하면 안되나?'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미란이가 은희에게 날리는 일침이 꼭 나한테 하는 말 같다. (미란이의 생각이지만) 싫어도 좋은 척 수십년 참아가며 의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멋진 인간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은희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미란이가 하는 말, "너 그닥 의리있는 년 아니야."

"너 그닥 엄청 일 잘하고 부지런하고 희생정신 강하고 그런 놈 아니야. 그렇게 보일려고 그렇게까지 노력 안해도 돼."

나랑 가까운 동료 중 한명이 지금 나에게 저 말을 해준다면 기분이 홀가분하고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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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불미스러운 일로 동료들과의 관계와 안정된 일자리를 잃고 쫒겨나듯 퇴사한 이전의 수셰프도 한 때 나의 롤모델이었고, 지금 모든 직원들로부터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공공연히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헤드셰프 역시 내가 입사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존경심을 가져왔던 사람이다. 왜 나는 그들의 변하는 모습과 지극한 개인주의와 이기심을 관대하게만 바라봤을까? 이후에 내가 그들과는 다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며 더 나은 시선으로 보이길 무의식중에 원했던 걸까?

문득 그들이 어지럽혀놓은 주변을 단지 아랫사람으로서 마냥 치우고 정리하고 바로 잡아온 것이 과연 맞는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올라왔고 원하는 것을 얻은 거라면 그것도 틀린말이라 할 순 없지만 혹 이정도까지 하지 않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나 살짝 건방진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 하나만 의리지키자고 유난스러운 것이었을수도. 헤드셰프 일 덜어준답시고 지난 번 와이프가 아플때 케어러 리브도 눈치보고 쓰지 못했던 것이 특히 그렇다.

가까이 지내는 동료 몇몇이 건네는 미란이와 같은 진심어린 조언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까. 걔네들의 말처럼 이제는 좀 게을러져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을 가져봐도 될까. 게을러져봤자 잠깐 생각에 그치고 말겠지만 적어도 매일 느끼는 압박감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온 힘을 한 곳에 쏟다가는 다음 10년, 20년을 준비할 시기를 놓칠까 걱정이다. 어느정도 여유가 있어야 생각도 하고 사는 법이니까. 그럴 여유가 없을 정도로 고되게 일하려고 호주에 온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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