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집주인 입장에서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렸을때는 뭐 친한 친구 초대해서 라면이나 끓여먹고 티비 보고 과자먹다 이제 집에 가라 하면 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특히 이 곳에서는) 최대한 격식을 갖추면서도 방문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신경써야 하는 나름 쉽지 않은 이벤트이다. 더군다나 알게 된 지 얼마 안되는 사이는 더욱 그렇다.
장을 봐서 신선한 새 재료로 음식을 대접할때도 사전에 특정 음식에 알러지가 있는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뭔지, 밥만 먹기 좀 그러니 술 취향도 미리 알아논 후에 종류별로 와인이나 맥주도 준비한다. 늘 집에 있는 백수면 사람 오는게 마냥 즐거운 일이긴 하겠지만 버젓이 직장을 다니고 있고 일주일에 이틀 쉬는 날 중 하루를 온전히 소비하는 것은 그 다음 일주일의 밸런스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은 그래도 번거로운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본질은 관계의 유지와 평소에 나눌 수 없었던 편안한 대화를 통한 공감, 생각 및 의견 교류 나아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즐겁게 얘기하고 먹고 마시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을 때 초대하는 사람이든 초대받은 사람이든 좋은 기억이 남는다. 한 번 대접에 비용이 얼마가 들던간에, 신경을 얼마나 많이 써서 피곤하던간에 좋은 시간을 보낸 뿌듯함은 모든것을 상쇄하고 남는다.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그냥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그런 관계도 사람 나름이다.
호주에서 쉐어하우스나 스튜디오 별채를 살 때는 대접할 공간이 없어 지인을 초대하지 못했다. 이후 2배드 집을 렌트해 살 때부터는 꼴에 거실이 있다고 몇 번 손님을 초대한 적이 있지만 이것도 회를 거듭할 수록 고정관념이 더욱 고정이 되는 경험을 피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는 것은 본인에게도 창피한 일이겠지만 초대한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는 후회감을 들게 한다. 내가 포장마차 주인도 아니고 한 가정의 보금자리에서 술에 취해 목소리가 높아지고 헛구역질을 연신 해대고 감정이 격해져 말실수를 하고 자신의 몸을 못가눌 정도로 비틀대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나름 음식 대접에는 손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항상 코스요리로 준비한다. 티와 스낵부터 시작해서 스타터, 메인, 디저트에 와인도 화이트와 레드, 맥주, 흑맥주, 보드카까지 준비해놓고 취향껏 골라 마실 수 있게 제공한다. 누군가에겐 과할 수도 혹은 누군가에겐 부족할 수도 있지만 과하면 과한대로 대화를 나누며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하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조금 더 신경쓴다. 그래도 처음 오는 손님이 자신이 대접받았다고 생각들게 만드는게 그 반대의 경우보다 백 번 나은 것은 굳이 설명이 불필요하다. 참 안타까운 것은, 그 끝엔 늘 푸드코스트와 인건비 계산을 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술취한 개가 집주인이 데릴러 와 끌려 나가듯 내 집어서 기어나가는 손님의 모습을 한숨을 쉬며 지켜본 이후에 진이 다 빠진 상태로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눈을 감고 말이다.
먹고싶은거 참고 돈아끼자고 외식 한 번 줄이고 옷 안사입고 그렇게 줄이고 세이브하는 과정에서 손님 접대나 지인 선물을 위한 예산은 늘 따로 책정해둔다. 오로지 상대방과 상대방과의 관계에 집중해서다. 이런 나와 와이프가 호구인건지, 아니면 세상살기 힘드니 모처럼 편안한 시간에 마음놓고 술을 마셔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요즘 세상에 내 나이에, 그것도 흙수저 이민자의 삶에서 상처없는 과거와 여유있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들 힘들게 사는 와중에 집에 놀러 오고 싶다 하여 초대했더니 이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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