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에 중독되거나 신봉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꽤 즐겨먹는 편이었다. 여러종류의 튀김, 만두, 떡볶이, 라면, 피자, 부침개, 로띠 등. 그리고 특히 파스타의 경우는 얼마 전 사재기때문에 일반 면을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글루틴프리 면을 한 번 먹어본 이후로는 역시 파스타는 밀가루면이구나 를 느끼며 더 자주 먹게 되었다.
와이프가 크림파스타를 좋아하여 Thickened 크림을 넣어 자주 만들어 먹었는데 난 우유를 먹으면 항상 배탈이 나는 체질이라 크림파스타를 먹은 후에는 늘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려야 했다.
요즘 들어 시도때도 없이 화장실에 간다. 사실 우유에 있는 유당때문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상하게도 Dairy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음식들을 먹을때도 식후에 화장실을 자주 간다. 말이 화장실을 간다이지.. 평소 장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 고통이 어떤지 잘 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단 하루도 장이 편안한 날이 없었을 정도로 그냥 그렇게 달고 살아왔다. 아 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고 있구나. 신경이 예민해서 그렇겠지. 살다보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있고 그냥 남들보다 좀 더 잘 받는 성격이어서 그러지 라고 치부하면서 말이다.
지지난주부터 점점 입맛이 사라지고, 뭐 해먹는게 귀찮아지고 매일 두통에 시달렸다. 요즘 일도 안하고 집에서 영어공부 한다고 하루에 8시간 정도를 앉아있으니까 몸이 불편해지는구나 생각하면서 지내다보니 변비가 4일을 갔다. 그리고 점점 배가 이상하게 부풀어오르면서 몸 안에 구석구석 찌르는 듯한 통증과 불편함, 특히 자려고 누우면 숨도 턱 막히고 아 이상하네 왜이러지 하며 잠들다가도 일어나면 또 시작되는 두통.
몇 년 전에 겪었던 공황장애로 인한 불안증세가 다시 올라오나..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뭐 특별히 걱정하는 일도 없는데 이상하네.. 하며 공부에 집중도 못하고 이도 저도 못하고 하루하루 이상한 느낌을 달고 지내왔다. 밥먹는 건 더욱 귀찮아지고 배는 더욱 부풀어올라 터질 것 같으면서도 배는 고프니까 라면만 끓여먹고, 두통은 점점 극심해지고, 와이프가 집에오면 밥은 해줘도 난 입맛이 없어 고구마 삶아먹고 그렇게 저번주까지 지내왔다.
온갖 의심스러운 병명을 검색해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그러다 어떤 글을 보게되었는데 주제는 Gluten, 글루텐 불내증에 관한 증상과 밀가루 끊은 사람들의 신체증상 비교에 관한 내용이었다. 글루텐이 몸에 안받는 사람들은 밀가루 섭취시 자율신경계에 안좋은 영향을 받고 통증과 두통, 어지러움, 복통, 설사,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감정 기복을 겪을 수 있다는 거였는데 특별할 거 없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일하면서 음식을 만들 때도 셀리악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극소량의 글루텐도 조심해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늘 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글루텐 민감성 체질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렸을때부터 뭐든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두통이나 복부팽만, 변비 등의 증상으로 인해 병원에 가본 적도 없다. 명확히 의사에게 진단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확정할 순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내가 글루텐섭취를 하면 안되는 그런 체질인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안 이렇게 내 몸에 무관심했나 마음 속 깊이 반성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글루텐 성분이 있는 모든 음식을 끊어보았다. 끊는 김에 커피도 같이.
매일 아침 식이섬유(meta mucil)를 먹고 삶은 양배추를 매 식단에 넣어 하루에 반통정도, 단백질은 고기와 생선위주로, 버섯과 달걀, 미역 등을 함께 먹으며 식단을 조절해나갔다. 오늘이 8일차.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삼십몇년만에 내 몸은 글루텐을 거부하던 몸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조심스레 깨닫게 되었다. 부풀어올랐던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고 두통이 사라지고 눈이 맑아지고 피부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신이 맑아지니 공부도 나름 잘 되고 무엇보다 헬멧쓴것처럼 빡빡하게 머리를 조이던 느낌은 사라지면서 스트레스도 훨씬 덜 받고 있다. 밥은 삼시세끼 챙겨먹는데 살은 2키로가 빠지고 군것질은 억지로 끊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입에 대지 않게 되었다.
참으로 무식하게 살았다. 한국에서 자랄때는 알러지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고, 뭐든지 잘먹는게 좋은거라는 생각에 내 몸이 어떤 증상을 보여도 굳이 원인을 찾지 않으려 했는데 무관심해도 내가 내 몸에 이렇게 무관심했었나 하며 후회스러운 마음에 지난 날들을 되돌아봤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밀가루 음식을 달고 살았고 하루에 화장실을 기본은 다섯번은 넘게 다니면서도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면 멀쩡히 나오던 것도 그렇고.. 공황장애 후유증이라고 치부해왔던 불안 증세나 알 수 없는 온몸 구석구석 통증들, 어지럼증, 극심한 두통이 글루텐 섭취에서도 올 수 있는 증상들이었구나..
내가 의사가 아니기에 100%확신은 못하지만 대략 글루텐 섭취를 끊은지 4일정도때부터 이렇게 뱃속이 편안했던 적이 지난 삶에서 없었음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습관을 유지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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