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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Diary

04122020 도대체 왜 그랬을까.

by MJINAUS 2021. 6. 22.

기대가 너무 컸기에 실망감도 큰 듯 하다. 아니, 실망감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약 4년 전 Chef De Partie 경력직으로 우리 업장에 들어와 기존 수셰프인 크리스틀이 나간 후 3년 동안 수셰프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던 맷.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비상하고 영리한 두뇌와 민첩한 사고, 덩치에 비해 나쁘지 않은 신체적 능력, 부지런함, 리더십, 매니징 스킬, 창의력 등 셰프로서의 거의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던 그는 한편으로는 내가 배우며 따랐던 롤모델이었다. Culinary School 등록과 함께 이 회사에 들어와 접시닦이부터 시작하며 현재 Chef De Partie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나를 이 자리까지 올린 것은 기본을 잃지 않고 묵묵히 그가 지시하는대로, 그에게 배운 대로 역할을 수행해왔던 노력과 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열명도 넘는 셰프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난 끝까지 버틸 수 있었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늘 맷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몇 개월 전부터 그는 곧 개인 비지니스를 준비 중 이라고 나에게 귀뜸해왔는데 결국 얼마 전 더 나은 본인의 미래를 위해 퇴사를 결정했고, 내년 1월까지 남은 기간 동안 나를 트레이닝하며 끝까지 본인의 역할을 다 하고 나갈 듯 보였다.

그러나 일은 불과 퇴사 한 달을 앞두고 발생했다.

지난 수요일, 헤드셰프인 스티브가 런치 서비스가 끝나고 갑자기 나를 좀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어렵게 말을 꺼낸다.

“최근 맷과 관련된 아주 심각한 일이 발생했고, 특별한 변수 없이 예상대로 문제 해결 과정이 진행되고 마무리가 된다면, 회사에서 너에게 정식 오퍼가 내려올 것이다. 헤드셰프로서 내 첫 번 째 옵션은 너고, 네가 이 오퍼를 허락하면 넌 수셰프가 될 것이다. 블라블라블라 추가설명”

맷과 관련된 무슨 문제가 일어났는지는 떠벌이 로비로부터 몰래 전해 들어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사안이 너무나 심각하고 함부로 입밖에 내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었다. 맷은 저질러서는 안될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고 퇴사는 물론이거니와 법적인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수요일 당일 아침에 그 사실을 접하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혀 애써 일에 집중하고 있는 중에 스티브의 이 오퍼는 나의 혼란을 더욱 가중케 했다.

오퍼에 대한 결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자의 문제를 떠나서 내 커리어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시점이다.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이 오퍼를 거절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선택은 분명하다. 공식적인 오퍼가 내려오면 반드시 수락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에 앞서 맷과 관련된 이 일에서 오는 공허함과 허무함,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역할에 대한 집중이 어려울 듯 싶다.

하급자로서 배우는 과정이 혹독하여 가끔은 속으로 욕도 했지만 그래도 직속 상사로서, 그리고 롤모델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도움을 받고 의지해 왔던 사람의 불명예스러운 퇴사를 목전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내와 자식들, 행복한 가족이 있고 여유 있는 자산과 해박한 지식들, 꾸준한 커리어, 젊은 나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저지른 일순간의 실수라고 하기엔 범죄를 저지른 그 기간이 꽤 길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믿을 수 없는 이 사실에 모두 동요하고 회사 전체가 술렁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가장 정신차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배가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고 버텨야 하는 사람이 헤드셰프인 스티브고 그를 옆에서 어시스트하고 서포트하는 것이 지금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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