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비자로 100만원도 안되는 돈 들고 첫 호주땅에 발을 딛은게 2013년이었다. 3주 모자란 1년을 꼬박 채워 일하고 귀국하면서 호주 이민을 결심했다. 다시 호주로 돌아온 건 귀국 3개월 후. 그 사이 결혼도 하고 한껏 부푼 꿈 안고 2년 동안 열심히 돈을 벌고 와이프를 서포트했으나 간호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하려던 몇 년 동안의 와이프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났다. 한편 457 스폰서비자의 희망을 안고 있던 나는 고용주의 비자장난에 이용되어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열심히 한만큼 상처도 컸기에 공황장애가 왔다. 역시 시간이 약이라 몸과 마음을 어느정도 회복한 2017년 3월, 이번엔 내가 학생비자 메인 홀더가 되어 요리학교를 등록했다. 가능성이 가장 높아보였고 지금 돌아보면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엔 최소 5년짜리 혹은 1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계획의 시작이었다.
학기시작과 동시에 실무 경력을 쌓으려 이력서 한장 들고 동네 호텔 펍 비스트로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곳이다.- 다짜고짜 인사 담당자를 찾았고 헤드셰프 Steve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수요일 오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운이 좋겠도 수요일 오전은 스티브의 일주일 중 가장 한가한 시프트였고 다행히 인터뷰를 바로 할 수 있었다. 일을 구하고 있다, 요리학교를 갈 것이다 불라불라 설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총 20명의 셰프들과 30명 정도의 FOH가 일하고 90%이상이 호주인인 업장이었다. 두문장 이상의 영어를 구사할 수 없었던 난 무척 두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큰 건 실패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었다. 그래서 안할건가 할건가. 해야지. 또 비자장난에 이용 당하기 싫으니까. 퀄리피케이션이 없으니 키친핸드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션이었지만 첫발을 내딛었단 생각에 가슴 벅찼다.
와이프한테 비자는 내가 해결한다고 호언장담을 했던터라 바로 다음을 계획했다. 실패는 부족한 준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준비를 완벽히 하면 행운도 따르리라 믿었다. 남들과 다르게 학업 처음부터 졸업생 비자를 준비했다. 졸업생 비자를 위해서는 PSA(JRP Step 1)를 해야한다고 알게 됐고 또 영어점수도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전 뒤져가며 JRP Guideline을 읽고 또 읽었다. 학업과 일, 영어점수, 기술심사 준비.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주 $250짜리 세컨룸에 살아도 행복했다. 목표가 있었으니까. 없는 살림에 돈 아낀다고 에이전시 끼지 않고 모두 혼자 진행했던 게 영어실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2년의 학업을 마치기 몇개월 전부터 캐주얼에서 파트타임으로 전환 후 몇개월 지나 2019년 3월 졸업을 하고 풀타임으로 전환되었다. 졸업생 비자를 활용해 주 38시간 혹은 그 이상 일하며 비자 신청 시 증명 가능한 경력들을 쌓을 수 있었다. 2020년, 코비드19 rule에 따라 업장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지만 다행히 직전에 기술심사를 마쳤다.
2020년 lockdown 탓에 다음 비자로 생각했던 482비자(TSS비자 - 2018년에 457에서 482로 대대적 변경) 진행을 위한 경력조건을 맞추지 못해 407 트레이닝 비자로 우회할 수 밖에 없었고 12월에 노미네이션 및 비자신청이 들어갔다. 허나 407비자에서 482비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법무사의 변경이 있었다. 407을 담당했던 우크라이나 법무사와 뜻이 잘 맞지 않아 스트라스필드에 사무실이 있는 한국인 법무사와 482비자를 준비했다. 해가 지나 2021년에 다시한번 lockdown으로 또 경력 공백이 생겼지만 6월에 결국 2년 경력 조건을 갖춰 비자 신청을 했다. 407과 482비자 진행 중 호텔 라이센시, 헤드셰프와 50번도 넘는 미팅을 가졌다. 스폰서십을 진행해 본 적이 없는 회사라 1부터 100까지 설명하고 설득했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할 수 있다 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정말 절실했고 간절했다.
482다음 계획은 최종 관문인 PR 비자, ENS Direct Entry로 비자 신청을 위한 경력은 퀄리피케이션 취득 후 셰프로 풀타임으로 3년이 필요했다. 2017년부터 이 회사 근무를 시작했고 차근차근 스텝을 밟고 올라 2019년에는 풀타임 계약, Chef de Partie 이후 2020년에 Sous chef 타이틀을 달게 되면서 연봉조건, 포지션 등 비자 신청을 위한 근로계약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기술심사 유효기간이 남아있었고 영어점수(6.0each) 준비해 놓은 후 다시 한번 회사를 설득했다. ENS TRT가 아닌 DE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내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유와 회사가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을 어필했다. 몇번의 agreement 교환 후 결국 ENS DE진행을 승인받고 새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2년 9월 ENS DE 노미네이션과 비자 신청을 완료했다.
쉽지 않은 기다림이었다. ENS DE 신청 후 같은 달 각각 20년, 10년 근무했던 Licensee와 헤드셰프가 거의 동시에 퇴사를 했다. 회사 매각설이 나돌았고 작은 루머 하나하나가 내 목을 죄었다. 오너십이 바뀌면 비자를 다시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몇명의 시니어 셰프들이 연이어 회사를 그만뒀고 헤드셰프의 role을 대신해야 하는 위치에서 어디까지가 내 책임이고 또 어디까지가 권한인지 기준이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모를 사건 사고의 책임 회피를 위해 자잘한 모든 것을 레코딩하는 과정이 특히나 괴로웠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늘 준비되어야 했고 완벽해야 했다. 매출의 저조, 인력수급문제, 서비스 문제, 푸드 퀄리티, 각종 코스트의 밸런싱, 청결, 커스토머 컴플레인 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무슨 이유로든 문제의 책임을 추궁당하고 고용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FOH와 BOH 두 보스가 동시에 퇴사를 했지만 어쨌든 키친은 돌아가야 했고 호텔은 운영되어야 했다. 그렇게 버티다 다 떨어진 티타월 같이 너덜너덜 해지니 새 라이센시와 헤드셰프가 고용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호텔 운영에 필요로 하는 모든 자료를 정리해 제공하고 자리잡는데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연봉인상은 작은 보상이었다.
해가 지나고 2023년 5월 3일, RDO에 Day in lieu 하루를 붙여 4일 휴무 첫 날, 날씨가 너무 화창해 기분도 좋고 동네 마실이나 다녀오려는 찰나 문자 알림이 울렸다. 노미네이션이 승인됐다는 법무사의 연락. 모든 서류가 완벽했기에 며칠 혹은 한 달 안에 비자 승인이 될 것 같다고 일하고 있는 와이프에게 연락을 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이제 나가자 하고 샤워를 하는데 법무사에게 또 전화가 왔다. 휴대폰이 젖을까 받지 못했는데 전화가 끊어지고 문자 알림이 두 번 연속으로 울린다. 이미 텍스트로 대화를 마친 후 곧바로 재연락은 둘 중 하나였다. 이민성의 추가 서류 요청 안내 아니면 비자 승인. 물기를 닦고 샤워부스에서 나가려는데 뭔가 싸 한것이 발끝에서부터 몸을 감고 올라왔다. 이상하리만큼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겨우 집어 들어 법무사가 보낸 문자를 보니 '비자 승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앞이 뿌얘졌다.
Timeline
2017 3월 학업시작
2018 3월 서티4 종료
2018 5월 디플로마 시작, 캐주얼에서 파트타임으로 변경
2019 3월 디플로마 종료, 파트타임에서 풀타임으로 변경
2019 5월 졸업생비자 시작
2020 12 트레이닝비자 노미네이션 및 비자 신청
2021 6월 482 노미네이션 및 비자 신청, 407비자 철회
2021 11월 482비자 승인
2022 9월 ENS DE 신청
2023 5월 ENS DE 노미네이션 및 비자 동시 승인
가슴속에 큰 돌덩이 하나를 이제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호주 온 지 10년, 요리로 영주권을 따겠다고 마음 먹은지 6년이다.
꽤나 무거운 돌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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